앞에앉은 사람이.

또 잘난척을 하거든. 이렇게 말해주세요.

-번데기앞에서 주름잡고있네.
-오뚜기앞에서 중심잡고있네. (나 여기서 빵터졌음)
-피카츄 전기세내는소리하고 있네.

출처 :: 무슨일이 일어나도 부끄럽지 않은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by scigirl | 2009/10/29 01:58 | 너와 나의 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그때 그시절 1

마음이 지치는 어느 날 밤. 나는 문득 1999년 생각이 난다. 깝깝하고 초조했던 1999년 1년동안 곁에 있었던 녀석들. J군, H군, I군.

수능을 똑! 망치고. 일찌감치 재수를 결정하고선 1월부터 학원에 나갔다. 이름하여 서울대 2반이었던 우리반에는 거의 100명에 가까운 학생이 있었는데, 여중.여고를 거쳤던 나에겐 그야말로 '정신없는'상황이었었달까. 쓰디쓴 실패의 여운은 내내 가시질 않아서 나는 거의 줄곧 책에 눈을박고 입술을 깨물고 그렇게 3-4개월을 지냈다. 그렇게 입었던 옷들이 가벼워 질 때 쯤. 점심시간에만 개방되는 정독실에서 친해진 녀석이 I군이었다. 딱봐도 공부만 하게 생긴 I군과 생각보다 쉽게 말을 트고선 이래저래 수다친구가 되었는데 이녀석과 나의 조합이 줄곧 계속되었던건. 예를들어 이런상황. 정독실에서 책을 싸들고 5층에 있던 교실까지 돌아오는동안 나는 필통과 2개의 노트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온다 (물론 난 모르고 교실올라와서 찾는다고 난리를 치겠지) 그럼 I군은 뒤에 줄곧 따라오다가 그것들을 챙겨서 조용히 내 책상위에 올려놓고 꿀밤한대 먹이고 간다. 사실 I군과 나와의 스캔들이 있었지만 천만의 말씀. 그시절 I군과 나는 각각 짝사랑 하던 사람이 있었다. (하하) 하여 틈만나면 서로 짝사랑하는 상대의 이야기를 터놓으며 낄낄댈수 있었던거지.

시간은 계속 흐르고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때즈음. 토요일 5시에 학원을 마치고 공부할 곳을 찾던 나는 I군과 함께 우리동네에 있던 한 지역 대학 도서관을 찾게 되었고 여기에 동참했던 몇몇녀석중에 J군과 H군이 있었다. 여기서 J군은 훤칠한 키와 외모에 반내에서도 훈남.으로 통하던 녀석이었는데, 사실 내 주위에도 이녀석을 흠모하던 아이들이 꽤나 있었다. 사실 이녀석의 핵심은 이런 훈남스러운 외모라기 보다는 시원털털한 성격이라고 할수있겠다 (J군 밥사라 ㅋ) H군은 귀여운 외모의 정말로 야무진 녀석이었는데 훗날 우리에겐 '마담 H'로 통하게 되는녀석으로 나름 개성적인 성격으로 충돌가능성이 있던 나머지 녀석들의 윤활유 역할을 확실하게 한 녀석이라고 할수 있겠다. 사실 나는 여름방학동안 그동안 짝사랑하던 녀석, S군과 급진전이 되어 속닥속닥 연애 비스므리한걸 하다가, (하다가!) 그녀석이 반의 다른여자애와 눈이 맞아서 학원을 그만두는 (그만두는!) 엄청난 일 (하하. 그땐 이게 엄청난일이었다)이 생겨서 정말 쪽팔려서 학원 못다닐만큼 속상한 때였는데 이때 이녀석들이 많이 힘이 됬었다. 여자랑 다르니까 이녀석들이 같이 S군을 씹어주진 않았지만서도 그냥 같이 있어주고 딸기우유(에 미쳐있던시절이었다) 사다주고 그렇게 말이다. 여튼 여러녀석으로 시작된 지역대학도서관에서 공부하기 모임은 나와 이 세녀석으로 모여졌고 시간은 이제 재수생에게 가장 힘들다는 9월로 흘러가고 있었다.

9월까지는 주말에만 그 이후에는 주중에도 우리는 줄곧 그 대학도서관에서 공부했는데 그당시 우리는 오전 9시 이전에 나와서 공부하다가 점심. 또 공부하다가 저녁. 그리고 한 30분 떠들고 놀다가 막차 끊길때까지 공부. 뭐 이런식이었다. 아침에 먼저온 녀석이 자리를 잡아주게 되어있는데. 젤 마지막에 온 녀석이 150원하던 자판기 레몬홍차를 애들한테 돌렸다. 집이 젤 가까웠던 나는 보통 일찍 나왔고 잠이 덜깬 눈으로 멍하니 책상에 앉아있으면 애들이 와서 조용히 놓고가던 그 홍차의 찐한 향이 아직도 선하다. 저녁식사 후 소화를 시킨다는 명목으로 우리가 주로 했던건 '걷기'였었는데. J군 H군 I군과 나란히 걸으면서 주로 했던건 '대학가면 뭐할까'였다. 내가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직도 기억에 선한건 까만하늘에 꽤 촘촘히 박혀있던 별이랑. 아이들의 웃음소리.정도랄까.

수능 보기 전날 예비소집일에 마지막으로 그대학에 모여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마지막 화이팅을 했었던 우리는 수능이 끝났던 그 주에 그 대학으로 가서 짐정리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걸어나오면서 우리가 했던얘기는 아마도 이제는 다시 이렇게 모여 '공부'를 할 일은 없겠지. 였었는데. 수능을 보고서도 우린 같은 논술학원을 다녔고. 같이 논술스터디를 했다. (왜그렇게들 징하게 붙어다녔었을까, 하하) 그때즈음에는 학원끝나고 다같이 맥주를 한두잔 마시기도 했었던거 같고.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이후에 우리는 각기 같거나 다른 도시로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가면 뭐 예상했던것과 같이 각기 자신의 생활로 바빠지고 연애를 시작하고 한두달에 한번씩은 하던 연락이 점점 뜸해지고. 우리가 작년에 봤니 못봤니 하는 얘기를 하는 일이 생기다가 그렇게 세월이 오년이 넘게 흘렀을때. 우리의 연락책 마담 H가 제안했다. 안되겠다. 모여서 '사진'을 찍자고. 매해는 당연히 못만날테니 지금부터 쭈욱 우리가 함께만나는 날이 있으면 그때마다 찍자고. 쭉 모아놓으면 나중에 우리가 어떻게 나이를 먹어왔는지가 한눈에 보이지 않겠냐고. 그렇게 말이다. 우리모두 좋은생각이다 오오. 하며 동의는 했지만 하하 결국 그 사진은 아직도 찍지를 못했다. 시간이 5년에서 7-8년이 흐르고 나는 유학을 떠났고 고사이 I군은 결혼을 했고 H군은 소화기내과 치프선생님이 되었고 J군은 제대를하고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닌다.

마음이 지쳤던 어느날밤 나는 아이들이 생각나서 전화기를 들었다. 마침 연락이 닿은 J군과 한참 낄낄거리며 옛날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말했다. "이제서야 말이지만 난 니네 디게 좋아했단 말이다. 우리 연락좀 하고 살자니까" 그랬더니 J군이 버럭!하며 말했다. "임마. 니네 좋아했다는 말이라거나 연락좀 하고 살자는 말은 우리같은 관계에는 어울리는 말이 아니지! 한 일년만에 전화해도 우리한테 그 시간의 흔적이 안보이잖아!" 하하, 인연이란건 친구라는것에 필요한것은 어쩌면 그것이 숙성될 '시간'이라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10년전이라며 옛날이야기를 하는 고 30분동안 나에게 이런 단단한 시간이,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나는 이유없이 마음이 차 올랐다. 녀석이 이야기한다. "니 한국오면, 우리 간만에 모여서 어디 조용하고 어두컴컴한데 촛불하나 키고 쳐박혀 옛날이야기 하며 와인이나 마시자."

아무때나 전화해서 울어도 웃어도 되는 사람이 있다는건. 분명 감사해야 할일. 그때그시절의 추억으로 시작된 이 관계들이 더 단단해 질것임을 믿자. 얘들아.

by scigirl | 2009/10/26 01:25 | 너와 나의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6)

靑春

끝없이
정말 끝없이
여기가 천국의 끝이거나
한 것처럼
오만해질 것

그리하여
어느 날
눈 화안하게 트여 오는
순정한 지평 하나를 볼 것.

꽃을 드리는 이유 연화리 시편 17,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곽재구,

걱정하지 말아요.

시간이 우리를,
우리가 있어야 할 그곳으로
데려다 줄 거예요.  그때까지 다만, 오만해질 것.

여기가 천국의 끝이거나 한 것처럼.

에에. 아직 靑春,인데 뭐가 그리 걱정인가요. 화이팅! 오케? :)

- Dr. house 님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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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의 격려란 이렇게 맘이 벅차다.
여기가 천국의 끝이거나 한것처럼. 그렇게 그때까지. 다만, 오만해질것.

고마워요 Dr.house 님

by scigirl | 2009/10/23 00:26 | 너와 나의 이야기 | 트랙백 | 덧글(5)

좋은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

영화라는 매체를 관심있게 들여다 본것이 십년이 채 안되었지만. 이것에 대한 나의 애정이 날로 깊어간다는 것은 사실에 틀림이 없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대라면 '엘프'라고 자신있게 외치는 디즈니 취향을 가진 남자친구는 나에게 어제. '뭐 볼만한 영화 없어?' 라고 물었다. 나는 음..이라고 십초쯤 고민하다가. 홍상수와 허진호의 전작. 혹은 임순례감독의 몇개. 또는 김태용감독의 가족의 탄생정도를 예로 들어주니 남자친구 하는말. '됬네 이사람아'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게 소설이던 연극이던 드라마이던 영화이던) 그것을 동경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음...그거있잖아 명치 저 끝아래부터 따땃해지다가 심장부근쯔음 오면 급기야 뜨거워지는 그런느낌. 그걸 이끌어내 주는 어떤것을 자꾸 찾게되' 라고 대답하리라. 그느낌을 조금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건 남루하고 찌질하고 때로는 초라하기까지 한 삶 혹은 나.일지라도 분명히 살아가는것은 가치있는 것이라는것을 한번더 확인할 수 있는. 그런것이랄까.
친구녀석과 맥주한잔을 했던 어느 늦은밤에. 무슨이야긴지 정신없이 깔깔대다가. 녀석이 한마디 한다. '언니. 나중에 꼭 영화 만들어요. 지금 언니가 겪는 것들. 하는 이야기. 그것들이 누군가에겐 힘이.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한다. (하여 제목도 정했다. 제목은 '눈가리고 야옹' - 푸하하)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는 그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고민의 시간이 존재했으리라. 어렴풋이 추측한다. 하여 나는 이 끝나지 않을 생각의 고리가 지겹지만. 끊지는 않겠다고 주먹을 쥔다. 이 때로는 지겨워 도망치고 싶은 이 고리속에서 나는 분명히 얻어가는 것들이. 단단하지만 무뎌지지는 않을 어떤것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것이라고. 그것의 실체는 시간이 조금더 지나면 드러나 줄것이라는. 이믿음을 놓지 않을것이므로.

by scigirl | 2009/10/22 11:58 | 너와 나의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단한줄도 읽기싫은것.

클래식을 듣는다.
와인은 알아야 먹는게 아니라. 그냥 맛있으면 먹는다.와 비슷한 일맥으로, 클래식은 일단. 들리면 들어보자.의 마인드로 시작된 클래식 청취. 이게 땡긴다는건 머리가. 좀. 아프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나의 두통의 이유는 시시각각 바뀌지만 이즈음에는 한가지 '단한줄도 너에대한건 읽기 싫어' 쯤이 되련가. 여기서 '너'는 나를 칭하기도 너를 칭하기도 한다.

1. 나.
은희언니는 종종 '이 삶에. 기대할게 있어?' 라고 말했다.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 오랜침묵을 깨고 뱉어냈던 그 한마디에 스물둘셋의 나는 '아. 너무 멋있잖아.'를 연발했고 서른의 나는 살면살수록. 삶에대한 기대는 나를 지치게 할 뿐이군.이라는 생각을 한다. 도대체 나는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 거였을까. 어떤 기대가 나를 이토록 때때로 처참하리만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일까. 새삼. 이 '기대'라는 단어를 조명한다. 예를들어보자. 오늘 읽어야하는 논문이 10편있다. 아침부터 논문을 맹열히 읽기 시작하며 생각하겠지. '오늘안에 다 읽어야해. 할수있어.'. 수업이 미팅이 회의가 있었을수 있겠다. 그리고 논문 10편을 읽지못하는 사태 발생. 잠을 잤던 못잤던 그다음날 아침 출근길은 분명. 괴롭다. 이건 과연 내가 논문 10편을 읽지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기대에 스스로가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기대를 했건 말았건 어짜피 못읽을 10편이었으면, 기대는 힘만빠지게 할뿐. 그것의 긍정적인 작용은 무엇이 있는가?

이유없는 기대로. 나를 그것에 가두고. 그리고 그것으로 초라해지고. 하여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구하는 이것. 이런거라면 EJ. 너에관한건 읽어주지 않을테다. 라는 생각.

2. 너.
도저히 놓을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 서로에게 공들였던 시간들이 너무 절절해서. 그래서 삐걱삐걱 어떻게든 돌아가던 관계가 있었다. 둘다 노력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그 삐걱삐걱 돌아가던 톱니는 결국엔 멈춘다. 이유는 톱니날이 다 닳아 없어져버렸달까.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단 한줄도. 너에관한건. 읽지않아. 이제'

포기하는순간이 게임종료라고 안감독이 그토록 말했지만. 나는 이제 고통을 감내하고 주어진 것을 해치우면 밝은 내일이 온다.식의 '새마을운동'같은 인생론은 이제 그만.이라고 선언한다. 이것이 무엇으로 대체되어질지는 관찰해봐야하겠지만.

* 블로그에 이딴 우울글이나 끄적이다니. 하며 급반성中.

by scigirl | 2009/10/21 23:06 | 너와 나의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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