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10일
[Movie] 멋진하루 :: My Really Dear Enemy


(이글에는 영화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왠일이야?" "돈갚아. 꿔간돈 350만원" 로 시작하는 지난연인의 일년만의 재회로 영화는 문을 연다. 일년전 헤어진 연인에게 돈을 받으러오는 희수(전도연)의 구구절절한 사연에 대한 설명도 오전시간에 담배를 피워대며 경마장에 죽치고 있어야하는 병운(하정우)에 대한 설명도 모두 생략한채 말이다. 병운은 만난순간부터 늘 그랬던듯이 뺀질뺀질 의미없는 말들을 뱉어내고 희수는 아마도 누구나 그상황에 그랬을법하게 어처구니가 없다. 끝까지 오늘 돈을 다 받아내겠다는 희수와, 돈 350만원을 받아내기위한, 다시는 만나지 않을것 같았던 둘의 하루동안의 동행은 그리 시작된다.한줄로도 요약이 가능한 <멋진하루>가 120분의 러닝타임이 지겹지 않을수 있는 이유는 주인공 병운과 희수의 캐릭터다. 다양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우리주위에 혹은 스스로에게 대입시켜 볼수있는 평범하디 평범한 둘의 캐릭터는 관객을 서서히 사로잡는다. 병운의 되풀이 되는 스페인에 막걸리 집을 내겠다는 말에서 오는 그의 미워할수 없는 대책없음이나. 희수의 미간에 종종 잡히는 주름에서 연상되는 30대 미혼여성의 생활으로부터의 짜증과 피곤등을 감독은 군더더기 설명없이 깔끔하게 잡아낸다. (하루간의 동행이라는 이야기에 맞게 단 한벌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희수의 스모키화장 마저 그녀의 짜증과 피곤을 잘 표현했다.)
병운은 돈을 받으러다니기 위해 총 일곱명의 여자를 만난다. 한여사라 불리우는 유능한 사업가부터 마트에서 일하는 이혼녀 초등학교 동창까지. 그녀들은 내어놓은 10만원에서 100만원에 해당하는 돈과 그리고 간간히 엿보이는 그녀들의 삶의 모습과 병운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일상을 본다. 로맨틱 코메디에서 보이는 멋진집. 멋진남자. 귀여운여자. 그저 즐겁기만 한 연애. 갈등뒤에 준비된 행복. 따위를 누리는 사람은 단 1%도 될까말까라는것. 사실은 삶은 때론 구질구질하며 짜증이나기도 하고. 우리 모두 한데 그리 엉켜 살고 있다는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세상에는 사랑스러운 사람. 사랑할수밖에 없는 인연.이 있기마련이며 다들 그리 살아나간다는것.
350만원을 거의 다채워서 받아냈던 그들의 하루간의 동행에서 사실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비가 잠깐 왔었고 그리고 차가 견인되었다가 와이퍼가 망가졌던 것 뿐이다. 아마도 그 어떤일이 지치도록 시달렸을 희수의 닫힌 마음속 상처는 지하철에서 병운이 뱉어내는 수다를 들으며 왈칵 눈물을 쏟아내거나 쉼없이 계속되는 병운의 뺀질거림에 결국 웃고마는 변화속에서 서서히 새어나온다. 어쩌면 그녀는 누군가에게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나 사는게 이리 지치고 힘들다고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그날 하루.를 병운과 함께하며 아마도 저밑에 상처를 다독었을게다.
이윤기감독은 2004년 <여자정혜>로 '관계와 상처에서의 감정의 절제'로 많은이들의 마음을 울리며 입봉했다. 그후 <러브토크>, <아주 특별한 손님> 등의 작품에서 비슷한 맥락의 표현방법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상처를 조명해왔다. 마지막 헤어지는 지하철역으로 가는 차안에서 병운은 가방속 마늘즙을 내어놓고 남은돈 이십몇만원에 차용증을 쓴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희수와 병운의 눈속에는 내지르고 싶은 어떤말이 가득했겠지만 그것을 그들은 고쳐진 와이퍼와 왔던자리를 한번더 되돌아와 길거리를 헤매는 병운을 잠깐 바라보는 희수의 마지막 미소로 대신했다. 그들이 그때 그렇게 헤어져서. 병운을 바라보는 희수에 얼굴에 걸린것이 눈물이 아니라 미소여서 다행이었다. 연애를 알고 이별을 알고 상처를 아는. 찌질하지만 미성숙하지는 않은 삼십대의 청춘들은 반드시 그리했어야 할테니까. 말이다.
이 영화는 명실공히 2008년 최고의 영화라 외쳐도 무방하다. 칸의 여왕 전도연과 충무로의 불루칩이라는 하정우의 더할것도 뺄것도 없는 군더더기 없는 연기와 이윤기감독의 탄탄한 시나리오에서 비롯된 때론 섬세하고 때론 과감히 생략할수 있는 연출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런이들이 한국 영화계에 버티고 있는이상. 충무로의 미래는 밝을 수 밖에 없다.
# by | 2009/01/10 03:16 | EJ column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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